안용성, 『교회를 위한 성서학: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인가?』
복음서의 역사성과 사실성에 대한 성서학적 탐구
1. 성경은 역사적 사실인가?
1.1. 문제 제기: 신앙과 사실 사이의 갈등 한국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성경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서학계, 특히 20세기 서구 주류 성서학은 성서의 사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이러한 괴리는 신학생들과 지적인 고민을 하는 평신도들에게 큰 혼란을 줍니다. 이 책은 "성경은 역사적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며, 보수적 교회의 믿음과 비평적 성서학의 연구 결과를 중재하고자 합니다.
1.2. 실증주의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19-20세기를 지배한 실증주의(Positivism)는 관찰과 실험으로 입증된 '과학적 사실'만을 진리로 간주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보수 신학의 대응: 성경의 모든 기록이 과학적,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려 했습니다(예: 창조과학). 그러나 이는 현대 과학과 충돌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주류 성서학의 대응: 성경을 '사실'의 범주에서 분리하여 '의미'나 '신앙적 진리(케리그마)'의 영역으로 옮겼습니다(예: 루돌프 불트만). 이는 성경의 합리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으나,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를 심화시켰습니다.
1.3. 책의 목표: 보수적 전회(Conservative Turn) 저자는 최근 성서학계, 특히 복음서 연구에서 일어나는 '보수적 전회'를 소개합니다. 이는 고대 전기(Biography)와 역사 서술, 구술성(Orality) 연구를 통해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재확인하는 흐름입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성경이 '고대인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임을 논증합니다.
2. 제1장: 사복음서의 차이와 불일치
성경의 사실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서 내부에 존재하는 '사실적 불일치'를 직시해야 합니다. 저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비교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점들을 제시합니다.
2.1. 배열 순서의 차이
성전 정화 사건: 요한복음은 예수 공생애 초기에(2장),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은 공생애 마지막 수난 주간에(마 21장 등) 배치했습니다.
베드로의 기적적 어획: 누가복음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눅 5장), 요한복음은 부활 후(요 21장)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합니다.
예수의 설교 장소: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산 위)', 누가복음은 '평지설교(평지)'로 배경이 다릅니다. 또한 마태는 설교를 한곳에 모았고, 누가는 여러 곳에 분산시켰습니다.
2.2. 세부 서술의 차이
공생애 기간: 공관복음은 예수가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며 한 번의 유월절을 보낸 것(약 1년)으로 묘사하지만, 요한복음은 예루살렘을 자주 방문하며 세 번의 유월절(약 3년)을 보낸 것으로 서술합니다. 오늘날 학계는 요한복음의 3년 설을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봅니다.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 시간: 공관복음에서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이며 예수는 유월절 당일에 처형됩니다. 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유월절 하루 전날(양 잡는 날) 처형됩니다. 이는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묘사하려는 신학적 의도가 반영된 차이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족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다윗 이후부터 요셉까지 이름과 대수가 현격히 다릅니다.
부활 현현 장소: 마태/마가는 갈릴리에서의 만남을 강조하지만,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고 서술합니다.
이러한 불일치는 복음서가 현대적 의미의 '정밀한 속기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3. 제2장: 사실(Fact)이란 무엇인가?
'사실'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복음서의 사실성을 평가하려면 현대의 잣대가 아닌, 1세기 당시의 '사실'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3.1. 사실과 의미: 베어 팩트(Bare Fact)의 허구 실증주의는 해석이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사실(Bare Fact)'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실은 인식되는 순간 '의미'의 옷을 입습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에서 유의미한 사건을 선별하고 배열합니다. 즉, 역사는 '해석된 사실'입니다.
3.2. 고대의 역사 서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신화와 구별되는 '역사(Historia)'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초월적 원인(신, 운명 등)을 역사적 사실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고대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상뿐만 아니라, 그 배후의 신적 작용도 '사실'이었습니다.
3.3. 1세기의 역사 서술과 복음서 복음서가 기록된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역사와 전기(Biography)는 문학적 예술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개연성(Plausibility): 고대 역사가들은 자료가 부족할 경우, 상황에 가장 적합한 연설이나 대화를 재구성하여 기록했습니다(투키디데스의 고백).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를 드러내는 정당한 저술 기법이었습니다.
유연성: 같은 저자(예: 플루타르코스, 요세푸스)라도 독자나 목적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다르게 서술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 전승을 편집하고 배열했습니다.
마이클 리코나(Michael Licona)의 분석: 리코나는 플루타르코스의 전기들과 복음서를 비교하며, 고대 전기 작가들이 사용한 8가지 작법(전가, 이동, 결합, 축약, 스포트라이트, 단순화 등)이 복음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남을 입증했습니다. 즉, 복음서의 차이는 오류가 아니라 당시의 정당한 문학적 작법의 결과입니다.
4. 제3장: 복음서의 장르
복음서를 어떤 장르로 보느냐에 따라 독법과 기대치가 달라집니다.
4.1. 과거의 견해: 복음서는 전기가 아니다 20세기 초 불트만과 양식비평 학자들은 복음서를 '민속 문학(Kleinliteratur)'이자 케리그마(선포)의 집합체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에 관심이 없으며, 신화적이고 제의적인 성격 때문에 전기(Biography)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복음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4.2. 현재의 견해: 복음서는 고대 전기(Bios)다 1970년대 이후 찰스 탈버트, 리처드 버릿지, 데이비드 오니 등의 연구를 통해 복음서가 '그리스-로마 전기(Bios)' 장르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 되었습니다.
리처드 버릿지의 연구: 버릿지는 주제, 분량, 구조, 문체 등 다양한 기준에서 복음서를 분석한 결과, 복음서가 당시의 전기 문학(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과 동일한 장르적 특징을 공유함을 증명했습니다.
함의: 복음서가 전기라는 것은 저자들이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의 실제 삶과 가르침을 기록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독자들 역시 복음서에서 역사적 정보를 기대했습니다. 다만, 현대의 전기처럼 연대기적 정밀함을 추구하기보다 주인공의 성품과 본질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고대 전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3. 누가복음은 역사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연속된 하나의 저술입니다. 누가는 서문(눅 1:1-4)에서 목격자의 증언을 검토하고 차례대로 기록했음을 밝힙니다. 이는 고대 역사서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5. 제4장: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복음서는 구술문화(Orality)에서 문자문화(Literacy)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복음서의 형성 과정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5.1. 구술문화의 특징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 대부분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습니다. 정보는 주로 입에서 입으로(구술), 기억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보존 방식: 기억하기 쉽도록 리듬, 운율, 반복, 대구법 등을 사용했습니다(예: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시적인 말씀들).
책의 역할: 책은 묵독용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기 위한 대본(낭독용)이거나 기억을 돕는 보조 수단이었습니다.
구술의 권위: 고대인들은 문서보다 목격자의 생생한 구술 증언을 더 신뢰했습니다(파피아스의 증언).
5.2. 복음서에 나타난 구술성 마가복음은 구술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납니다.
카이(Kai, 그리고) 병렬 구문: 문장들이 종속적이지 않고 대등하게 연결됩니다('그리고... 그리고...').
생생한 현재 시제: 과거 사건을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샌드위치 구조: 한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어 주제를 강조하는 기법은 구술 연행에서 청중의 집중을 돕는 장치입니다.
6. 제5장: 복음서의 구술성과 역사적 신뢰성
6.1. 복음서 형성 3단계
제1단계(기원후 30년경): 역사적 예수의 활동.
제2단계(30~70년): 구전(Oral Tradition) 단계. 사도들의 선포와 공동체의 기억.
제3단계(70~100년): 복음서 기록.
6.2. 양식비평의 오류: "통제되지 않은 전승" 불트만과 양식비평은 제2단계(구전 기간) 동안 익명의 공동체가 예수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변형시켰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전승이 "공식적이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informal uncontrolled)" 상태로 흘러다녔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는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과 멀어졌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6.3. 새로운 모델 1: 케네스 베일리의 "공식적이지 않으나 통제된 전승" 중동 문화를 연구한 케네스 베일리는 중동의 촌락 공동체가 중요한 전승(역사, 시, 족보 등)을 전달할 때 엄격한 통제 시스템을 작동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하플라트 사마르). 마을의 장로들이나 인정받는 암송자들이 전승을 주도하며, 틀린 내용이 나오면 청중이 즉각 수정합니다. 예수 전승 역시 이러한 공동체의 '비공식적이지만 강력한 통제' 하에 보존되었습니다.
6.4. 새로운 모델 2: 리처드 보컴의 "목격자 증언"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에서 복음서가 목격자(Eyewitnesses)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논증합니다.
전승 기간의 짧음: 예수 사후 마가복음 기록까지는 약 40년입니다. 이는 목격자들이 생존해 있을 기간입니다.
목격자의 이름: 복음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베드로, 야이로, 시몬 등)은 그들이 그 전승의 출처이자 보증인임을 나타냅니다.
인클루지오(수미상관): 마가복음의 베드로, 요한복음의 사랑하는 제자는 책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여 전체 내용이 그들의 증언임을 보증합니다.
결론: 복음서 전승은 익명의 공동체 창작물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목격자들(사도들)에 의해 "공식적이고 통제된(formal controlled)" 방식으로 전수되었습니다.
7.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다
저자는 긴 논의 끝에 "성경(복음서)은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결론 내립니다. 단, 이때의 '사실'은 현대 실증주의가 요구하는 기계적 정확성이 아니라, 1세기 고대 전기와 역사가 추구했던 '의미를 담은 사실',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의 불일치는 고대 문학 관습 내에서 허용되는 다양성입니다.
복음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검증을 거쳐 신중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실제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서평] 믿음과 지성의 가교를 놓다
1. '묻지마 믿음'과 '회의적 지성' 사이에서
한국 교회 강단에서 "성경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은 종종 금기시되거나, "믿음이 부족하다"는 질타를 받기 십상입니다. 반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성서학은 때로 성경을 난도질하여 역사적 실체를 알 수 없는 문서로 만들어버리곤 합니다. 안용성 박사의 『교회를 위한 성서학』은 이 위험한 두 극단 사이에서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도들이 품을 법한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학문적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신앙적인 대답을 제시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과 '친절함'입니다. 복음서 간의 명백한 불일치(예: 성전 정화 시점, 족보의 차이 등)를 억지로 조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 뒤 성서학적 도구를 통해 그 이면의 진실을 탐구합니다.
2. 고대의 눈으로 성경 읽기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사실'의 정의는 21세기가 아닌 1세기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장르의 재발견입니다. 저자는 복음서가 현대적 의미의 '리포트'나 '속기록'이 아니라, 고대 '전기(Bios)'임을 명확히 합니다. 고대 전기는 인물의 연대기적 정확성보다 그 인물의 성품과 본질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들이 신학적 목적을 위해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내용을 요약·확대(리코나의 작법 이론)한 것은 '오류'가 아니라 당시의 정당한 '저술 방식'이었습니다. 이 관점은 성경의 문자적 무오류성에 집착하다가 작은 모순에 부딪혀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둘째, 구술성과 목격자 증언의 복원입니다. 과거 불트만과 양식비평 학파는 복음서가 익명의 공동체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역사성을 훼손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케네스 베일리와 리처드 보컴의 연구를 인용하여, 예수 전승이 공동체의 통제와 목격자(사도들)의 권위 아래 철저히 보존되었음을 입증합니다. 특히 "마가복음 기록 당시 목격자들이 살아 있었다"는 지적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논거가 됩니다. 이는 성경이 누군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과 '증언'의 산물임을 확증해 줍니다.
3. 목회적 적용 및 추천 대상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교회를 위한' 성서학입니다. 학문적인 논의가 자칫 건조해질 수 있음에도, 저자는 이를 설교와 성경 공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목회자들에게: 설교 준비 시 복음서 간의 차이를 발견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각 복음서 저자의 고유한 신학적 의도(의미)를 파악하여 더 풍성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자유주의 신학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비평적 학문을 수용하되 복음주의적 신앙을 견지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양식비평의 한계와 최신 성서학의 흐름(기억 이론, 목격자 증언)을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지성적 평신도들에게: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맹목적인 믿음에서 성숙한 이해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4. 역사로서의 케리그마, 케리그마로서의 역사
안용성 박사는 결론적으로 복음서가 "역사로서의 케리그마(선포)이자, 케리그마로서의 역사"라고 정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Fact)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믿음의 고백(Meaning)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왜곡된 잣대(실증주의)로부터 성경을 구출하여 고대의 생생한 증언으로 되살리는 작업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을 덮을 때, 독자는 "성경은 사실이다"라는 명제를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의미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